1.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은 1993년 처음 시행된 한국의 대학 입학 평가 시험이다. 이후 몇 차례 개정이 있었으나, 국어, 수학, 영어, 탐구, 제2 외국어 등으로 나뉘는 시험 과목 구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중에서 수학 또는 수리 영역은 현재 총 30문항(객관식 21문항, 주관식 9문항)으로 구성된다.
2. 1996년 11월 22일에 시행된 1997학년도 수능은 역사상 난도가 가장 높았던 시험으로 오늘날까지도 악명 높다. 특히 수리 영역은 자연계의 경우 만점자가 단둘밖에 없었고, 평균 점수는 80점 만점에 21점에 불과했을 정도다.
3.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수학도가 적성을 두고 고민한 끝에 수학을 포기하고 미술로 전향하기로 한다. 그 뜻을 지도 교수에게 밝히자, 그가 이렇게 답한다. “잘 생각했어. 자네는 수학을 전공하기에는 감수성이 부족하니까.” 이야기에서 미술은 음악이었을 수도 있고, 감수성은 상상력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요지는 같다. 수학은 딱딱하고 기계적인 분야가 아니라, 오묘하고 아름다운 세계다.
4. 대다수 한국인에게 수학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는 곳은 수능이다. 사실, 수능은 ‘수학적 삶’의 절정일 뿐 아니라 끝이기도 하다. 추상적 원리와 질서를 탐구하는 영역으로서, 초중고 12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수학 교육은 일상생활 적용 여부와 무관하게 가치 있지만, 그 가치가 100분 만에 단 30문항으로 장렬히 표현된다는 사실에는 비장한 아름다움이 있기도 하다.
5. 1997학년도 대학 수학 능력 시험 수리 영역은 수학(교육)의 아름다움을 최고도로 구현한 어떤 시험에 바치는 헌사다. 역사상 가장 어려웠다는 ’97 수능 수학 문제를 우리가 하나라도 맞힐 가능성은 0에 수렴할 것이다. 대신 우리는 나름의 완고하고 엄밀히 잘못된 추상법을 통해 문제에 접근한다. 30개 패널로 구성된 작품은 각각 주어진 문항을 분석하고, 일정한 방법으로 문제를 변형해 형태를 도출한다. 그것은 감수성이 부족해 수학 대신 미술을 진로로 선택한 우리가 제출하는 답안지이기도 하다.
(매트릭스: 수학—순수에의 동경과 심연 전시 도록,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