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작가에게 전시회 자체를 홍보하는 포스터를 의뢰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하며 실제로 거리에도 붙인다는] 전시회 개념이 미술관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시하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에 흥미로운 해법을 제시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외부와 내부, 디자인의 실제 맥락과 전시용 공간을 의도적으로 뒤섞는 전시회 개념을 좀 더 발전시키는 작업을 시도했다. 우리는 (‘실제’) 관객의 폭을 넓혀 브르노 시민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사람들까지 소통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브르노 전시회 홍보 포스터를 만들고, 그것을 일정 기간 서울 시내에 붙여 놓자는 생각이었다. 최종 작품은 현장에 붙은 포스터를 다시 촬영한 사진이면 그만일 것 같았다. 일종의 액자식 포스터인 셈이다.
그렇지만 잠재적 관객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아무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예컨대 국외 여행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 포스터를 보여 주는 것은 무의미할 테니까. 즉, 그 대상은 실제로 여름에 체코 방문 계획이나 의사가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마침 체코는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된 참이다. 작년에는 체코에서 일부 촬영한 (그러나 도시를 단순히 ‘이국적’인 배경으로만 활용했을 뿐, 실제 체코인의 생활은 보여 주지 않은)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프라하 패키지 투어’ 전문 여행사도 성업 중이다. 그런 여행사 사무소야말로 포스터를 붙이기에 적당한 장소일 것이다.
포스터 자체의 디자인도 구상하기 시작했다. 물론 외관이 중요하지는 않았지만, 제작을 하려면 디자인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부가적인 제약 사항을 스스로 덧붙였다. 첫째, 포스터는 주어진 텍스트의 한국어 번역문을 실어야 한다. 둘째,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실어야 한다. 즉, 최종 출품작에는 다른 포스터와 같은 내용이 모두 (어쩌면 비엔날레 로고는 제외하고) 사진 한 장에 담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잘 받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즉, 사진으로도 모든 정보를 쉽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브르노에서 최종 포스터를 보는 사람도 내용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까.) 가독성을 높이려면 타이포그래피에만 의존해야 할 테고, 글자 크기는 되도록 커야 할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 부과한 제약을 염두에 두고, 간단한 스케치를 만들어 보았다. 얼마간은 기능적 이유에서 중립적인 타이포그래피 언어를 활용했다. 거기에는 여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포스터와 대비 효과를 얻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첫 번째 위기가 닥쳤다. 마감 1주일 전까지도 아무 여행사에서 연락을 받지 못했다. 협조 편지에 뭔가 실수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요청 내용 자체가 수상쩍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대안을 찾아야 했는데, 그때 인천국제공항이 머리에 떠올랐다. 결국, 프라하행 대한항공 항공편 이륙 시간에 맞춰 공항에 나가 사람들에게 포스터를 보여 주며 전시회를 홍보하기로 했다.
두 번째 위기는 비용 문제였다. 원래 계획은 포스터를 대형 출력하는 것이었으나,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대안으로 작업실의 흑백 레이저 프린터를 쓰기로 했는데, 그 기계로 출력할 수 있는 최대 크기는 A3였다. 그래서 전체 포스터를 A3 여덟 장으로 나눠 인쇄해도 용지 사이에 글자가 걸리지 않게 디자인을 조정했다. 사실은 그처럼 제작 단위에 맞춰 정보를 구조화하는 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디자인에 좀 더 합당한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쁜 색색 테이프로 출력물을 이어 붙여 들고, 프라하행 KE935편 이륙 3시간 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세 시간 동안 한 사람은 포스터를 들고 섰고, 다른 사람은 그 광경을 사진으로 찍었다. 작업실에 돌아와, 선명도나 가독성이 쓸 만한 사진 몇 장을 골랐다.
사진 배열을 두고는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사진 여러 장으로 ‘퍼포먼스’의 다양한 순간을 보여 주는 방법이 있었다. 또는 한 장만 골라 전형적인 포스터처럼, 거의 기념비적으로 제시하는 방법도 있었다. 결국에는 후자를 택했다. 관습적으로 보이지만 조금 이상한 포스터가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사진 아래 제목과 정보를 위한 여백이 있는 결과물은 전형적인 포스터 같기도 하다. 다만 이 작품에서 사진과 여백의 관계는 좀 다르다. 그 구도는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과 그것을 홍보하는 작품의 관계를 혼란스럽게 한다. 화이트 큐브의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전시회의 역설을 문자 그대로 번역한 작품인 셈이다.
(화이트 큐브의 그래픽 디자인 전시 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