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utopia)’는 어원상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한다. 비무장 지대는 유토피아에 대한 상충하는 관념과 욕망이 폭력적으로 충돌한 결과 형성된 공간이다. ‘이곳(here)’도 아니고 ‘저곳(there)’도 아닌 장소로서, 일종의 전도된 유토피아(nowhere)이기도 하다. 도라산역에 무인 지대처럼 유지되는 컨테이너 공터에 임시 설치될 이곳/저곳은, 존재하지 않는 곳, 아무 곳도 아닌 곳을 다시 구체적인 장소로 선언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다. 다만, 여기서 해당 공간은 ‘이곳이냐 저곳이냐’라는 양자택일을 거부하는 이중적 장소로 규정된다. ‘이곳도 아니고 저곳도 아닌 곳’을 ‘이곳이자 저곳’으로 바꾸어 부르는 연습이다.
글자 형태는 광활한 컨테이너 야드 표면에 형성된 격자를 바탕으로 구축됐다. 이 글자들은 크기가 너무 커서 매우 높은 곳에서 내려봐야 비로소 제대로 읽을 수 있는데, 현장의 속성상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현실 탓에 작품의 의미는 한층 통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