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시 또는 구체시가 종종 함수나 순열 등 무의식적 체계를 동원해 언어의 물질성을 의식적 관심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면, 무지개는 소리의 물질성, 정확히 말해 소리 재생 매체의 물질성에 초점을 둔다. 무지개는 특정 CD 재생기, 즉 일본 무지에서 만든 벽걸이형 CD 재생기를 위한 작품이다. 1999년 나오토 후카사와가 디자인해 이제 현대 디자인 클래식으로 자리 잡은 제품이지만, 우리가 관심을 둔 것은 디자인 아이콘으로서 위상이 아니라 단순히 그 제품이 재생하는 CD 표면을 완전히 드러내 준다는 사실이었다. 무지개를 이 재생기에 걸고 틀면, 7분간 이어지는 침묵(정확히는 CD 재생기의 미묘한 작동음)과 함께, 작은 무지개가 떠오른다. CD 표면 그래픽은 여러 구상시의 작법처럼 정교한 수학적 체계에 따라 디자인했는데, 정확한 알고리즘은 비가 멈추면서 구름과 함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