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 스펙트럼은 삼성 미술관이 주최하는 격년제 시상 행사 ‘아트 스펙트럼’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전시회다. 지난 아트 스펙트럼 참여 작가 일곱 명과 그들이 각각 추천한 작가 일곱 명이 작품을 전시했다. 우리는 Sasa[44]와 박미나의 초청으로 참여했다.
한국 그래픽 디자인 1세대의 1960~70년대 대표작 중에는 포스터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들이 디자인한 기업이나 상품 홍보용 포스터, 남북통일 기원 포스터, 평화 기원 포스터, 환경 의식 고취 포스터 등을 역사책에서 뒤져보면, 그 현대성과 대담성에 종종 놀라곤 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그들 중 다수가 실제로 기업이나 정부, 단체에서 의뢰 받아 제작, 배포된 포스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상당수는 디자인 협회 전시회 등에 출품할 요량으로, 아무 제약 없이, 디자이너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디자인한 실험 작품이다. 거기에 쓰인 기업 로고, 상품 사진, 광고 문구 등은 실제로 해당 기업에서 제공하거나 주문한 것이 아니라, 작가-디자이너가 제 작품에서 ‘사실성’을 높이려고, 그 조형물을 더욱 ‘디자인’처럼 보이게 하려고, ‘미술 작품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려고 삽입한 요소일 뿐이다. 즉, 그런 포스터가 드러낸 것은 디자인이 적정 가치는커녕 필요성마저도 인정받지 못하는 문화에서, ‘내 마음대로 포스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면 이렇게 해 보겠다’라는 디자이너 자신의 소망이다.
수정주의는 그런 역사적 포스터 픽션 형식을 빌리되, 전후 관계와 맥락을 뒤틀어 좀 더 또렷한 혼란을 일으키려 한다. 수정주의는 5회에 걸쳐 열린 지난 아트 스펙트럼 전시회를 뒤늦게 홍보하는 포스터이자, 존재한 적 없었던 포스터의 아카이브 에디션이다. 각 포스터에서 시각적 중심을 이루는 요소는 과거에 우리가 제안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던 이런저런 디자인 아이디어와 조형 요소다.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려 했으나 좌절한 아이디어를 가공의 디자인으로 부활시키는 셈이지만,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포스터는 이후 역사에서 실제로 제작되어 쓰인 다른 디자인과 뒤섞이면서 일종의 대체 역사를 구성할지도 모른다. (이 글과 같은 증언이 없다면, 우리가 지어낸 포스터가 미래에는 실제 아트 스펙트럼의 유물처럼 기억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디자인 평행 우주의 다원성을 강조하는 뜻에서, 포스터 세트는 세 가지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스펙트럼 스펙트럼 전시 도록,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