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Sasa[44]의 개인전이다. 작가 자신이 일상에서 소비하거나 배출하는 물건을 기록하고 수집한 아카이브를 샘플링과 리믹스, 전유와 재전유 등 현대 대중음악과 미술을 관통하는 기법으로 제시하며, 현대 문화의 속성과 주체의 자율성을 생각하게 하는 전시회였다. 익명성을 중시하는 작가의 선택에 따라, 홍보물에는 작가와 미술관 이름을 빼고 전시회 제목과 미술관 로고, 전시 기간만 표시했다.
제목은 전시 내용과 부합하기도 하고 모순되기도 한다. “흠뻑 취하여 제정신을 잃은 상태”라는 뜻은 통하지만, “헝클어져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결딴이 나거나 어수선한 상태”라고 보기에는 무척 깔끔하고 체계적으로 제시된 전시다. 제목 레터링은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않은 인상과 깔끔하고 단정한 인상을 동시에 전달한다. 힘차지만 어설프고 여린 면도 있고, 귀엽지만 짓궂은 면도 있는 형태다. 주어진 공간을 제목으로 꽉 채우려면 때로는 글자 너비를 크게 조절해야 하므로, 이를 위해 기존 한글 나루체 활자에서 추출한 뼈대를 어떤 비례로 변형해도 획 굵기는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광화문 일민미술관 정면에 설치된 대형 현수막은 커다란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일종의 ‘공공 미술’ 작품이 됐다. 사람들은 구체적 정보 없이 거대하게 (낯설게) 제시된 단어 ‘엉망’에 스스로 의미를 투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 SNS에 공유했다. 어떤 보수 언론인은 이 현수막을 현 정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로 해석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실제로 전시장을 찾은 그는 정치 구호 대신 무수히 늘어선 음료수 병에 실망하는 듯했다.)